1990년 한국 대중음악 연간 차트 상위 10곡을 정리했다. 사랑일 뿐야(김민우) ·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 보랏빛 향기(강수지)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신해철)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김완선) 등이 이 해를 대표한 곡이다.
팀당 평균 인원은 NaN명이고, 가장 큰 팀은 -Infinity명, 가장 작은 팀은 Infinity명이다.
1990년의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남긴 자신감과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불러온 개방의 공기 속에 있었다. 컬러텔레비전은 이미 안방의 기본값이었고, 아파트 단지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았으며, 대학가에는 여전히 시위의 열기가 남아 있었지만 거리의 젊은이들은 점점 더 소비와 유행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요계도 정확히 그 지점에 서 있었다. 1980년대를 지배했던 조용필의 절대적 위상은 여전했으나, 대중의 귀는 이문세와 변진섭이 열어젖힌 도시적 발라드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 있었다. 음악을 듣는 매체는 LP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다시 막 보급되기 시작한 CD로 옮겨가는 중이었고, 워크맨을 귀에 꽂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그해 음반 시장의 실질적 주인이었다. 방송은 KBS와 MBC 두 축이 전부였고, KBS <가요톱10>의 1위 발표와 연말 MBC <가요대제전>의 10대 가수 선정이 곧 그해 가요계의 공식 기록이던 시절이다. 다시 말해 1990년은 아직 '기획사'가 아니라 '작곡가'와 '방송'이 스타를 만들던, 대중음악의 마지막 아날로그 전성기의 첫 해였다.
1990년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요약하라면 많은 이들이 김민우를 떠올린다. 그는 그해 데뷔 앨범 한 장으로 <사랑일 뿐야>와 <입영열차 안에서>를 동시에 히트시키며 단숨에 최정상에 올랐다. <사랑일 뿐야>는 담백하고 매끈한 미성으로 이별의 체념을 노래해 방송 차트를 장악했고, <입영열차 안에서>는 그해 가장 많은 눈물을 만들어낸 노래였다. 징병제 국가에서 입대는 청춘의 통과의례였고, 애인을 두고 떠나는 열차의 정경을 그린 이 곡은 개인의 사연을 국민적 정서로 확장시켰다. 두 곡 모두 작곡가 하광훈과 작사가 박주연의 손에서 나왔는데, 이 콤비는 1990년대 초 한국 발라드의 문법을 사실상 설계한 사람들이다. 김민우의 성공은 '잘생긴 신인 + 검증된 작곡가 + 방송 노출'이라는 공식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었고, 이후 수많은 신인 발라드 가수가 같은 경로를 밟았다. 이 곡들이 지금도 군대와 청춘을 이야기할 때마다 소환된다는 사실 자체가 1990년이라는 해가 남긴 가장 오래가는 흔적이다.
팀·멤버·데뷔 정보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CC BY-SA). 사진은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자유 이용 저작물입니다. 음반 표지는 아이튠즈 공개 API를 통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