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2팀, 멤버는 7명이다. 유리상자 · H.O.T. 등이 이 해에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데뷔 팀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길러 데뷔시키는 방식이 자리잡던 1세대에 속한다. 팀당 평균 인원은 3.5명이고, 가장 큰 팀은 5명, 가장 작은 팀은 2명이다. 이 해 데뷔 팀이 속한 기획사는 2곳으로 확인된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6팀이 데뷔한다.
1996년 1월 31일 오전, 서울 명륜동의 한 회견장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1992년 3월 23일 데뷔한 지 1,410일 만이었다.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겠다'는 서태지의 말은 그날 지상파 3사 저녁 뉴스의 첫 소식으로 다뤄질 만큼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팬들이 방송국과 회사 앞에 몰려들었고, 은퇴의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쏟아졌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다섯 명의 십대 소년이 데뷔했다. 한 시대의 상징이 스스로 무대를 내려온 자리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스타가 들어선 것이다. 1996년은 그 교대가 같은 해 안에 일어난,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의 해로 남았다. 여기에 오랜 검열 제도까지 무너지면서, 이 해는 여러 겹의 의미에서 분기점이 되었다.
1996년은 창작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회복된 해다. 전년 <시대유감> 사태로 촉발된 여론과 음악계의 요구가 이어진 끝에, 음반 발매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강제하던 제도가 그해 폐지 수순을 밟았다. 10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음반 제작·판매에 앞서 내용을 심사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한 법률 조항이 헌법이 금지한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1970년대부터 수많은 곡을 금지곡으로 묶고 가사를 잘라내던 제도가 마침내 법적 근거를 잃은 것이다. 이후 심의는 사전 검열이 아니라 등급 분류 중심의 사후 관리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는 곧바로 가사와 표현의 폭을 넓혔고, 1990년대 후반 한국 대중음악이 훨씬 다양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된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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