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7팀, 멤버는 21명이다. 노을 · 블랙 비트 · 스윗 소로우 · 제이워크 · F-iV · LUV · Vibe 등이 이 해에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데뷔 팀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길러 데뷔시키는 방식이 자리잡던 1세대에 속한다. 팀당 평균 인원은 3.0명이고, 가장 큰 팀은 5명, 가장 작은 팀은 2명이다. 이 해 데뷔 팀이 속한 기획사는 6곳으로 확인된다. 전년 6팀에서 1팀 늘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3팀이 데뷔한다.
2002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대중이 가장 크게, 가장 오래 함께 노래한 해였다.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일 월드컵이 열렸고,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붉은 옷을 입고 모였다. 이 시기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집단행동의 도구였다. '오 필승 코리아'가 전국의 광장을 채웠고, 응원 구호와 박수 리듬이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 장르처럼 기능했다.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오르는 동안 거리는 매일 밤 거대한 야외 콘서트장이 되었다. 대중음악이 개인의 감정을 위로하는 일을 넘어 공동체의 감정을 조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해만큼 선명하게 보여준 시기는 드물다. 동시에 그 해는 한국 음악이 국내 시장의 울타리 바깥에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낸 해이기도 했다. 광장의 함성과 바다 건너의 차트, 2002년은 이 둘이 나란히 놓인 해였다.
월드컵의 열기를 가장 잘 흡수한 가수는 싸이였다. 그의 '챔피언'은 '소리 지르는' 노래였고,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는 노래였으며, 무엇보다 함께 뛰기 위한 노래였다. 그 전까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관객의 신체 참여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설계한 곡은 많지 않았다. 윤도현 밴드가 부른 '오 필승 코리아'는 록 밴드의 사운드로 응원가를 다시 쓰며, 축구 응원과 록 공연이 같은 몸짓을 공유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문법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에 깊게 남았다. 대학 축제, 프로야구 응원, 지역 행사에서 반복 재생되는 '떼창 곡'의 목록이 사실상 2002년에 확정되었고, 훗날 K-POP 공연에서 관객의 함성과 응원봉이 무대의 일부로 계산되는 관행도 이 시기의 집단적 학습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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